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어두운 내면을 가리지도, 숨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간에 나오는 십일조 장면에서 닭의 크기가 작아서, 이게 무슨 닭이냐고 다시 돌려보내려는 장면이나 웃음을 죄악과 동일시하는 수도사의 모습에서 엄격하고 제한된 삶을 추구하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재물 사상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느낌이며 스산한 기운을 전혀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내가 이렇게 하얗게 늙어, 지난 세월 떠오르는 수많은 얼굴 중에서 그 소녀의 얼굴이 가장 또렷한 것이 부끄럽다. 오랜 세월동안 꿈에서조차 지울 수 없었던 얼굴... 속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가장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의 대사는 누군가에게 쉽사리 말하지 못할 아쉬움과 후회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다. 눈 내리던 평원에서 소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그래도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말을 한번 돌렸을 때, 바라본 소녀의 눈빛에서 그는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나를 붙잡아주었으면, 그래서 수도사 지위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사랑을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다른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사랑했던 소녀의 얼굴, 그녀와 나눴던 사랑이라는 부끄러운 것이었다고 무덤덤하게 말하지만 전혀 무덤덤할 수 없었던 불타오르는 사랑이었고, 중반부 이후에서는 사건 해결을 위한 이유의 전부였으며, 신을 찾게 되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지막이 읖조리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느끼는 것은, 사랑이란 감정은 고귀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추악한 행위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 여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며, 단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그로 인해 불순한 생각 - 수도사가 아닌, 그 여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영화에서는 많은 것을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한다. 수도사들은 항상 청결하고 제대로 된 옷을 갖춰입는 고상한 사람으로 표현된 반면에, 영화 전반부에 걸쳐서 여자는 남자들에 비해 미개하고, 말을 할 줄 모르며 본능에 충실한 '동물'로 묘사된다.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그녀를 마녀로 몰아가는 재판관의 논리에 촛점을 더 열심히 맞춘다. 그리하여 악마와 놀아난 마녀라고 판결 내리는 과정까지는 거의 일사천리라고 할 정도로 '여성'의 발언은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여자는 모두 마녀이고, 수도자가 고결하고 순결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멀리하며 여자들을 갱생시켜야 한다'고 영화 속의 수도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을 철저한 죄인으로 몰아가면서도, 암암리에 '성'을 사고파는 것을 통해 가톨릭적인 믿음보다 인간으로서의 본능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두가지 성향을 한꺼번에 보인다.

  주인공인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동안 겪는 심경은 별 다른 느낌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단 한 번의 관계 이후 가톨릭적인 사상에 대한 이율배반적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원초적 본능을 잊지 못하여 소녀를 기다리는 모습은 영화 전체를 조금 더 ‘사랑’이라는 가장 인간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름을 모르는 그녀는 먹고 사는 것을 위해 몸을 파는 이른바 '창녀'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삶을 위한 ‘생존수단’이, 몸을 팔아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을 향한 ‘믿음’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종교가 많은 영향을 끼쳤음에도, 한 개인의 삶보다 중요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절대 선은 무엇이며, 절대 악은 무엇이었나? 이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그 답을 제시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는 결과적으로 악한 재판관이 사망하고, 소녀가 살아남고, 스승도 불길 속에서 살아남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절대 선이 승리하였다고 쉽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은, 가치관의 충돌에서 그들이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결말 부분에서 우연찮은 화재와 농민들의 반란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악한 사람들 – 재판관과 호르헤 수도사 - 이 사망하게 되면서 다행스럽게도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윌리엄과 소년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사람들을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을 뿐, 누구 하나 자신의 힘으로 살려낼 수 없었던 것이잖은가. 여기서 선은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가톨릭'의 기본 사상에 배반된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행하는 가르침대로 행하였음에도 그들이 구하고자 하던 모든 것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재판과정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윌리엄이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이단으로 몰리게 되는 것 - 재판관으로서 가지는 인간의 한계보다는, 재판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권력의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처럼, 권력에 맞서게 되면서 위기를 증폭시킨다. 결정적으로 소년과 소녀는 단 한 번의 경험 이후에 많은 사건에 휘말리며 마지막에 눈빛 교환을 하고 나서 헤어지는 모습은 무기력한 인간의 한계를 여과 없이 나타내어준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은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여러 모순점에 대한 의문을 모두 - 영화 내에서는 스승, 영화 밖에서는 관객 - 에게 던진다. 자신과는 관계없을지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위배되지 않는다면 지키는 것이 옳은가? 에 대한 윌리엄의 대답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동정심'이라고 밝힌다. 기존 사회의 틀 안에서 올바른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장미가 가지는 이면처럼 겉으로는 보기 좋지만 그 안에 가시를 품고서 모두를 찌를 준비를 하는 것처럼 얽히고 섥힌 가치관의 대립에서, 모두들 그래도 아직 정의는 승리한다는 공식을 믿는다. 그 정의라는 것이 누가 어느 편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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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수능이 끝났습니다. :)
이제 블로그에 글 제대로 적어볼까 생각중이에요. 으하하하하하핫 <- 제정신을 놓고 있는 중인듯.
예전처럼, 정치관련 글을 진지하게 적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구요. 일단 책 읽은 것들에 대해서 글을 적어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럼,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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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klein.tistory.com BlogIcon 나에+ 2009.12.04 10:03 신고

    어....약 6개월만의 포스팅이네...''

에, 오랜만입니다. N이에요.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무기력증에 걸립니다. 공부하다가도 밥먹다가도 멍-.때리는 경우가 발생하네요. 조만간 제대로 된 휴식 - 언제 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블로그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간만에 방문했습니다. 여전히 바닥을 치네요. 블로그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쿨럭.

써야 할 글이 많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이것저것 쓸 소재도 준비해뒀구요. 문화생활 했던 것들도 기억들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서 하나 둘씩, 그렇게 써내려가야 합니다. 네. 갑자기 the brilliant green의 Ash like snow가 생각나네요. 하얗게 다 타버리기 전에 얼른 얼른 써서 올려야겠습니다.

공부도 연애도 뭐든 일단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시, 돌아왔어요. 이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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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klein.tistory.com BlogIcon 나에+ 2009.09.09 15:03 신고

    WElcome.'-'*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aeh.tistory.com BlogIcon ㅅ ㅏ ㅇ ㅔ 2009.10.22 18:06 신고

    우왕 연애!!!



진짜, 최고인듯.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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